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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안동 도산 서원 여행

 

안동 도산서원을 가려면 안동을 먼저 가야 한다...

 

안동에는 유성룡 선생의 병산서원과 함께 유명한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이 있다.

두 곳은 서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동선이 맞지는 않다. 

하지만 안 동하면 볼거리가 많아서 두 번에 나누어서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늘은 도산서원으로 갑니다

 

우선 중앙선 기차를 이용하면 안동역에서 내려서 시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만약에 버스를 이용한다면 서 안동 쪽에 정류장이 있어서 그곳에서는 병산서원이나 하회마을을 둘러보는 게 좋다

 

깔끔하게 정리가 된 안동시내의 모습...

이런 곳은 최근에 만들어진 차 없는 거리의 모습이다..   물론 안동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안동 재래시장이 나온다

 

바로 유명한 안동 찜닭 집들이 줄지어있고, 길거리 음식 하며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하다.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보면 도산서원 67번이라는 안내가 있다

67번 동춘여객이다. 

도산 서원 앞에서 보면 강 건너 시사단이 보입니다

도산서원은 워낙에 많이 알려진 곳이라서 따로 이야기할 것은 없고  모처럼의 서원 탐방을 하였기에 사진을 올립니다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참조 글)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 교당 속 시설인 하고 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참조 글)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 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했다. (참조 글) 도산서원에서 제공하는 글입니다

채색이 되지 않은 문살...  아름답습니다

 

도산서원은 주교 육시설을 중심으로 배향 공간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교육시설은 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과 중앙의 전교당(典敎堂)을 기준으로 좌. 우 대칭으로 배열되어 있다.

 

동. 서로 나누어진 광명실(光明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동. 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이다. (참조 글)

동편 도산서당 건물을 ‘박약재(博約齋)’와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라 하는데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중앙의 전교당은 강학 공간과 원장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재 뒤편으로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자리하고 있다. (참조 글)

 

 

배향 공간인 사당 건축물로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尙德祠)와 각종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典祀廳)이 있는데 삼문을 경계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부속건물로는 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상고 직사(上庫直舍)가 있으며 이는 홍의재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입구 왼쪽에는 1970년 설립된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이 있는데, 퇴계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참조 글)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 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 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 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조 글)

 

날씨도 더운데 젊은 청년들이 도산서원 현판 앞 대청마루에 앉아서 무슨 담소를 나눌까요?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입장료가 무료라고 합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1501 (연산군 7년) 경상도 예안현(禮安縣) 온 계리(溫溪里: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진사 이식(李埴)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1521 (중종 16년) 부인 許氏(김해)를 맞아들이다. 1523 (중종 18년) 6월 장자 준(寯)이 출생. 상경하여 태학(성균관)에서 수학. 1527 (중종 22년) 경상도 향시 진사시(進士初試) 장원, 생원시(生員初試) 2등 합격,

 

10월 차남 채(寀) 출생. 11월
부인 허 씨 별세. 1528 (중종 23년) 진사시(進士會試-사마시) 2등으로 급제. 1530 (중종 25년) 부인 權氏(안동)를 맞아들이다. 1532 (중종 27년) 문과 초시 2등 합격. (참조 글)

1534 (중종 29년-34세) 3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다.


승문 원권 지부 정자(承文院權知副正子)와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이 되고, 춘추관, 기사관, 경연 시독관 등의 요직을 겸임. (참조 글)

1535 (중종 30년) 호송관이 되어 왜노를 동래까지 호송. 1536 (중종 31년) 선무랑(宣務郞)과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9월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임명.

 

1537 (중종 32년) 모친(朴氏)상을 당하고 향리에서 3년간 복상. 1542 (중종 37년-42세) 의정부 검상(議政府檢詳)으로 어사가 되어 충청도 감찰 재상 어사(災傷御史)로 강원도 감찰. 1543 (중종 38년) 신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 여러
관직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음.(참조 글)

서원 안에는 예쁜 나리꽃도 피여 있습니다

1547 (명종 2년) 7월 안동부사로 제수(除授)되었으나 사임.

다시 홍문관 응교로 제수(除授)되어 마지못해 상경하여 사퇴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1548 (명종 3년-48세) 외직을 자청하여 단양군수로 취임(9개월).

 

10월 풍기군수로 전임(1년 2개월). 단양팔경은
퇴계 선생이 이때 선정한 것이다. 1549 (명종 4년) 백운동서원의 사액(賜額)을 청하여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되었음. 1549 (명종 4년) 9월 9월, 신병으로 사퇴하고 귀향. (참조 글)

1550 (명종 5년) 2월 계상에 한서 암을 짓고 학문에 전념.

1558 (명종 13년-58세) 23세의 율곡 이이(李珥)가 계상서당을 찾아와 도학을 논함.

1570 (선조 3년-70세) 제자들에게 심경과 <역 하계몽>을 강의.

고봉 기대승과 심경 정도(心經情圖)를 의논하고, 11월 그의 격물치지설(致知格物說)을 개정함.

12월 장사 준비를 갖추게 하여 퇴도 만은 진성이 공지 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과 자명까지 몸소 써놓고, 8일 한서 암에서 70세를 일기로 역 책.

영의정으로 추증(追贈) (참조 글)  참조 글들은 도산서원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도산 서원은 세 차례 탐방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휴가철에 도산서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아래는 안동호 아래쪽에 있는 월영정입니다... 목조로 건축된 다리로서 야경도 아름답지만 낮에 봐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월영교 건너서는 옛 조상님들의 전통 가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곳도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름다운 월영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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